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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信을 回復해야 한다(1)_대담/鮮于 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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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6-09-30 13:23 조회6,98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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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 : 이렇게 모시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그동안 월정사(月精寺)에서 󰡔화엄경󰡕 강의를 하셨다는 데 얼마동안 누구를 대상으로 하셨습니까? 

스님 : 하루 일곱 시간씩 만 두달 동안 했습니다. 전국에서 모인 중견(中堅) 승려 60여명이 청강했습니다.

선우 : 스님께서 󰡔화엄경(華嚴經)󰡕을 국역하여 책으로 내신지가 몇 년 되시지.

스님 : 4~5년 되었습니다.

선우 : 일본(日本)의 경우보다 앞섰다고 들었는데.

스님 : 동경대학(東京大學)에서 경문(經文)은 다루었지만 논()은 다루지 못했습니다. 제가 지난번에 펴낸 것은 화엄경(華嚴經) 통현장자(通玄長者)40권 논()에다 청량소(淸凉疏)까지 곁들여 번역한 것으로 화엄학(華嚴學)을 집대성(集大成)한 셈이지.

선우 : 일반인은 불교하면 얼른 분규부터 연상하기 쉽습니다.

수습이 되어 가는 듯하여 다행입니다만 그런 세속적인 양상과는 달리 한편에서는 그토록 진지한 강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볼 때 우리 불교가 꾸준히 제 갈 길을 가고 있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 기회에 그런 불교의 참모습을 일반에게 알리고 싶군.

오늘 스님을 모시게 된 것은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가 금년 신문제작의 주제로 선정한 자신(自信)을 회복해야 한다는 문제에 대해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믿습니다만 조선왕조 말, 일제(日帝)시대, 해방 등의 격동기를 겪어오면서 우리는 자신을 갖지 못하는 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회가 이만큼 발전했고 대외적인 국가의 위치도 크게 향상된 만큼 국민 한 사람 빠짐없이 모두 자신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자신(自信)은 무엇이며 자신은 어떻게 회복돼야 하는 것입니까?

스님 : 자신이라는 것은 좀 가볍게 말하자면 상인(商人)은 돈 잘 버는 것이 자신이 될 것이고 사업가는 일을 확장시키는 것이 자신이 될 것이고 공부하는 사람은 글 잘하는 것이 자신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높은 차원에서 근본적인 문제로 생각해 볼 때 자신이라는 것은 우주관(宇宙觀)인생관(人生觀)의 핵심체, 즉 시공(時空)이 끊어진 자기의 근본마음을 밝히는 것입니다. 만일 이 밖에 다른 것을 목표로 해서 밝힌다면 진정한 자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밖의 것을 밝히는 것을 불교에서는 외도(外道)라 하고 사법(邪法)이라고 하며, 유교(儒敎)에서는 이단(異端)이라 하, 도교(道敎)에서는 방문(榜門=正門의 반대)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어떻게 회복해야하느냐 석가(釋迦)공자(孔子)예수 등 삼대성인(三大聖人)이 타파한 것은 다른 것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멸심(生滅心)이 본래 끊어진 자리를 본 것입니다. 이를 과덕(果德)이라고 하지. 예를 들면 나무의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닦을 때 바로 삼대성인(三大聖人)이 증득(證得=깨달아 얻은)한 이 과덕(果德)을 가지고 씨앗으로 삼는 것입니다. 만일 과덕(果德)밖의 다른 것으로 씨앗을 삼는다면 미신이 되는 것이지. 그러므로 과()가 없는 인()이 없, ()이 없는 과()가 없습니다. 불경(佛經) 즉 부처님이 󰡔법화경(法華經)󰡕을 설()한 것은 인과동시(因果同時)를 밝힌 것입니다. 모든 초목이 선인(先因=) 후과(後果=)지만 오직 연꽃만은 꽃 속에 열매가 맺어 있어 인과동시(因果同時)이지.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성불(成佛)한 과덕(果德)과 일체중생의 망상심(妄想心)이 둘이 아닌 것입니다. 마음의 생멸(生滅)을 찾아보면 본래 일어나는 곳이 없는 데 일어나는 줄로 망집(妄執)하여 일체 중생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누구라도 부처님의 법문(法門)을 듣고 한 생각을 돌이켜 다시 돌이킬 것이 없는 데로 돌아간다면 3천 년 전 석가(釋迦)가 먼저 성불(成佛)한 것이 아니. 3천 년 후 중생이 뒤에 성불(成佛)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참으로 자신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선우 : 잘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성인(聖人)이 갖는 자신과 중생이 갖는 자신은 차이가 있지 않겠습니까?

스님 : 물론 차이는 있지. 중생의 자신이 죽순(竹筍)이라면 성인(聖人)의 자신은 성장한 대나무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주관(宇宙觀)인생관(人生觀)의 핵심체인 밑바탕은 같은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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