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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藏寺法堂重創碑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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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월정사 지킴이 작성일15-01-05 13:56 조회5,710회 댓글0건

본문

佛者 覺也 常覺일새 故謂之覺王이요 亦爲萬法之主일새 故謂之法王이라 夫法王之爲體也 至虛至明하고 動靜之源 莫二하야 至靈至妙 緣計之念 非殊 惑見紛馳로되 窮之則惟一寂이요 靈源不狀이로되 鑒之則以千差 死生亦大矣어늘 而不得與之變하고 雖天地覆墜라도 亦將不與之遺하야 流出於方寸之間하야 縱橫於日用之際者也 古之聖人 抱此法王之道하야 或嗚於西域하고 或嗚於東震하야 聲振天下하야 以覺古今之大夢也 淸虛所謂 一法中 儒之植根 道之培根 釋之拔根者 是也 今三藏寺者 本是竹藏寺之改稱也 雖無文獻之可徵이나 而若依平日所聞之單片 與所記之散屑이면 則新羅梵日國師 寺于官舍之基하야 因以竹藏名之 盖取其世尊 坐竹林精舍하사 說三藏之敎法也일새라 現今竹西樓 位在寺之西隅 故亦因以得名者也 多經海岳相遷하고 屢見風雲變態하니 則悠悠往事 屈指 指亦酸矣로다 檀紀四千二百五十八年乙丑 天恩寺住持會曇師 發廣大願하야 以三和靈隱新興寺等 四個寺 聯合하야 新建布敎堂於官舍之後麓하니 現稱三藏寺者 是也 而附設育英機關하야 以竹藏幼稚園與竹藏學院 及女子學院等 種種名稱으로 布敎揚化하야 四旬餘星霜하니 于玆則現今三陟女子中高校之母體 因乙酉解放而變稱者也 越在癸卯 在德上人 再赴任於此하야 覩幼稚園之幾倒 與垣墻之全無하고 募緣鳩財하야 重修之 新築之하고 又在己酉 再赴此任하야 與信徒會長鄭永燮 婦人會長金相奉等諸氏 發起法堂改築工事하야 募緣於金振晩徐明澤等各界諸有志許하야 經之營之하야 至翌年冬而落之하니 總工事費三百三十萬餘圓也 宜其諸上士之德海 與僉檀那之善根 如恒河沙不可量也 而能原始要終勤勤成辦者 現布敎師在德上人也 住此揚化者 以禪定爲之骨하고 以看經爲之肉하고 以戒律爲之皮하고 以行智具足爲之眼目하고 爲之手足이면 則一堂之內 儼然做一個法王之體也 夫如是則佛恩施恩 一時報畢者 非也耶 囑余爲記 余不敢以不文而牢讓이라 故敍其顚末如右云爾 雖然이나 其法王者 何物而作何相耶 良久云
數條綠水巖前去
一片白雲山外飛로다
應化 二千九百九十七年 庚戌 小春十五日
五臺山人 呑虛 金宅成 撰
【번역】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다. 항상 깨달음을 얻으셨기에 각왕(覺王)이라 칭하고, 또 만법의 주인이시기에 법왕(法王)이라 한다. 법왕의 본체는 지극히 비고 지극히 밝아서 동정의 근원이 둘이 없고, 지극히 신령하고 지극히 오묘하여 연계(緣計)의 생각이 다름이 없다. 미혹된 소견이 어지럽게 치달리나 추궁하여 보면, 오직 하나의 고요일 뿐이며, 신령한 본원이 형상은 없으나 비추어 보면 천 가지의 차별이 생긴다.
죽고 삶 또한 큰 일이지만 그와 더불어 변하지 않고, 하늘이 떨어지고 땅이 무너진다 해도 또한 그와 더불어 사라지지 않아서 마음에서 흘러 나와 일상 생활에 나타난 것이다. 옛 성인들은 이러한 법왕의 도를 가지고서 때로는 인도에서 울리고 때로는 중국에서 울리어, 그 소리가 천하에 울려 퍼져 고금의 사람들을 깊은 꿈 속에서 깨어나게 하였다. 청허대사가 하나의 법인데 유가는 뿌리를 심고 도가는 뿌리를 북돋고 불가는 뿌리를 뽑았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삼장사는 죽장사(竹藏寺)를 바꿔 부른 이름이다. 문헌으로 고증할 수 없으나 평소에 들었던 단편적인 이야기와 이런저런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범일국사가 관사터에 사찰을 세우고 절 이름을 죽장사라 하였다. 이는 세존께서 죽림정사에 머물면서 삼장의 가르침을 설한 뜻을 취한 것이다. 현재의 죽서루가 절의 서쪽에 있는 것도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붙이게 된 연유이다.
여러 차례 상전벽해와 풍운과 같은 변화를 겪는 동안 덧없이 지난 일을 손꼽아 보면 손가락이 시큰거릴 지경이다. 단기 4258년 을축에 천은사 주지 회담스님이 큰 원을 세워 삼화사, 영은사, 신흥사 등 네 곳의 사찰이 연합하여 관사의 뒷 기슭에 포교당을 창건하였다. 현재의 삼장사가 바로 그곳이다. 그리고 부설 육영기관을 설치하여 죽장유치원, 죽장학원, 여자학원 등 여러 가지로 이름이 바뀌면서 포교한 지, 40여 년이 되었다. 바로 지금의 삼척여자중고등학교의 모체로써 을유년 해방을 계기로 명칭이 변경된 것이다.
그 후, 계묘년에 재덕스님이 그곳에 부임하였는데, 유치원이 무너져가고 주위 담장이 없는 것을 보고서 화주하여 중수, 신축하였다. 또 기유년에 그곳의 신도회장 정영섭, 부인회장 김상봉 등이 모두 법당 개축을 건의하여 김진만, 서명택 등 각계의 유지에게 화주, 공사를 시작하여 이듬해 겨울에 이르러 낙성을 보게 되었다. 공사비가 총 3백 3십여 만원이 소요되었다. 스님들의 공덕과 여러 신도들의 선근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힘써 그 일을 이루게 한 사람은 현재의 포교사 재덕스님이다.
이곳에 머물면서 포교하는 이들은 선정으로 뼈를, 경전으로 살을, 계율로 피부를, 수행과 지혜가 구족함으로 안목과 손발을 삼으면, 이곳의 법당에 의젓한 법왕의 몸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와 같이 하면 부처님의 은혜와 시주들의 은혜를 일시에 모두 갚는 것이 아닐까? 나에게 글을 지어달라 부탁하기에, 내가 글을 못한다고 굳이 사양할 수 없어서 그의 사실을 위와 같이 적은 것이다.
그러나 법왕은 어떤 물건이고 어떤 모양을 가지고 있을까?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게송을 한 구절을 읊었다.
몇 가닥 푸른 강물, 바위 앞에 흐르는데
한 조각 흰 구름, 산 너머 날아가네
쯧! 쯧!
불기 2997년(1970) 경술 10월 15일
오대산인 탄허 김택성 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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